
[권영심 작가 칼럼]
불과 몇 십년 전에는 영화나 티비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남성들의 담배 피는 모습이었다.
고뇌할 때, 열심히 일하다가 쉴 때, 무언 가를 탐색할 때, 그리고 글을 쓰는 남성 작가들의 내면의 고독을 내비칠 때 등등...담배는 주인공이나 출연자의 아주 중요한 모티브였다.
담배 끝이 타서 재가 떨어지는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는 공감하는 바가 컸고 저절로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찾았다.
"하! 내가 말이야! 바로 그 장면에서 줄담배를 끝도 없이 피웠단 말이야!"
그 허세는 바로 자신과 영화 주인공과의 교감이 그만큼 컸다는 공감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장면은 찾아볼 수도 없고, 현실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은 전염병자 비스무리한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담배의 해악이 워낙 크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제한하는 것들이 많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나라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영국과 뉴질랜드 등 아예 금연국가를 선언한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도 실내 금연 정책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으나,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그렇게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청소년들의 흡연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여성 흡연이 늘고 있다.
이 담배는 대체 어디서 우리나라에 들어 왔을까?
9세기 경, 잎의 형태로 중앙 아메리카 지역에 존재하던 담배는 일반인이 마음 대로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은 중요한 종교 제의와 제사 때 입혼의 촉매제로 담배잎 채로 불을 붙여 그 연기를 흡입했다고 한다.
그러던 담배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서 스페인 으로 전해 졌다. 잎담배를 벗어나 건조해서 가루로 된 담배가 1559년 처음, 스페인 톨레도에서 만들어져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후 크림 전쟁을 기점으로 전 유럽에 급속도로 퍼졌다.
제 1차,제 2차 세계 대전은 담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군력을 증강하기 위해 군대에 담배를 보급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도 군인에게 정기적으로 담배를 지급하던 때가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의 필터 담배가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이다.
포르투칼 상인들에 의해 필리핀에 들어간 담배는, 역시 같은 경로로 일본에 전해지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 전해져서 광해군 때에는 벌써 담배 연기로 인해 정사까지 중단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하멜 표류기에 의하면 조선의 아이들은 사오세가 되면 전부 담배를 피운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아이들의 흡연 은 몸 안의 기생충을 없애는 약으로서의 흡연 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피울 만큼 담배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담배를 남령초로 표현하며, 약으로서의 쓰임새 를 말하고 있다. 속병이 있는 사람은 대통에 담뱃잎을 넣고 불을 피워 그 연기를 흡입하도록 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라고 되어 있다.
단, 독이 있으므로 경솔히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으니 그 때도 담배의 해악에 대하여 경계 를 했다.
1760년 이익의 성호사설 에도 담배의 해악에 대하여 실려 있다. 인조 때의 장유의 계곡 만월에도 담배가 왜에서 왔다고 되어 있으니 담배가 일본에서 전해진 것은 틀림없나 보다.
우리의 민화에도 남녀 불문하고 긴 장죽을 늘이고 흡연하는 그림이 많으니 담배의 존재는 아무리 해악이 있다 해도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온 것만은 틀림 없다. 그토록 심한 시집살이에도 며느리의 담배 피는 것은 용납했다니, 흡연 중독의 맛을 알았기 에 그리했지 싶다.
그러니 정부에서 아무리 담배의 해악을 강조해도 흡연의 쾌락에 맛 들인 사람들을 막지는 못한다. 조그만 술집에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못 하게 해서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들이 많아졌다.
인도에 면한가게 밖에서 흡연석으로 마련한 의자들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가,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던 아이가 얼굴에 화상을 입는 봉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정부일까? 담배일까? 흡연자의 잘못일까?
그렇게 해악이 많은 담배를 엄청 값을 올려 판매하는 나라의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병에 걸려 죽어도 담배는 끊지 못하겠다는 흡연자들은 아무도 말리지 못 한다.
클린 시설이나 건물 주변에 수없이 깔린 담배 꽁초들을 보면서 눈가리고 아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오늘 어딘가를 가기 위해 길을 가는데 버스에서 내린 곳이 좀 한갓진 곳 이었다. 버스 안내판을 살피고 있는데 고딩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 셋이 내 옆으로 왔다. 한 아이가 내민 것은 만원짜리. 의아하게 바라보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아줌마 담배 좀 사주시면 안돼요?"
두 아이는 팔짱을 끼고 섰고 그 아이의 목소리는 참 당당했다. 그러고 보니 버스 정류장 뒤 편으로 편의점이 있었다.
"좀 사주세요 네?"
이 녀석들 보게. 어찌 보면 조금 위협적이라 할수 있었는데 나는 아이의 얼굴을 똑 바로 보고 말했다.
"어떻게 내가 담배를 사줄 수 있겠니? 너희들이 배가 고프다면 한 끼 밥은 배부르게 사줄 수 있단다. 그런데 담배는 안되겠구나. 아줌마가 안 사줘도 너희들은 어떻게든 피우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줄 수가 없구나."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더니 무어라고 투덜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아이들은 담배를 무슨 맛으로 피우는 걸까? 그렇게 막아도 피우는 아이들...참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