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분홍 좌석의 비움

  • 등록 2025.07.23 15: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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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분홍 좌석의 비움

 

 몇 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하고, 의식과 문화의 수준이 놀라울 만큼 고양되었다. 내가 직접 느끼고 받고 보기 때문에, 마치 강물의 흐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애정하는 교통 수단인 버스의 변화는 감탄할 정도다. 그럴 시간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스가 만원이 되어 꽉 차는 일도 없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어느 자가용 부럽지 않다.

 

그리고 좌석은 더없이 깨끗하고 편안하다. 요즘 신형의 버스는 짐을 놓을 수 있는 칸까지 마련되어 있어,서서 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 전에, 좀 먼 곳에 있는 대상자에게 보조 식품 을 전달하고 42번 버스를 탔다.

 

좌석이 비어 있어 앉아서 왔는데,건너편의 앞 좌석이 분홍 좌석 이었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의 물결을 느낀다. 임산부를 위한 예비 좌석인데,서서 가는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20정류장 이상을 가야 하는 긴 거리여서, 나는 마음 속으로 오늘 저 좌석이 계속 비어서 가나,아니면 누가 앉나...혼자만의 내기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앉지 않았다.

 

어르신이 두어명 탔는데도 뒷 좌석으로 가고, 그 자리는 계속 비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지하철에선 바로 앉는 어르신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거의 앉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가 가까워져서 학생들이 많이 탔는데도 그 좌석은 아무도 앉지 않았다. 학생들은 끼리끼리 헤맑게 웃고 떠들면서 도 그 자리는 비웠다. 그 비움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저 어린 학생들은 무슨 마음으로 앉지 않는 것일까?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내겐 감동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정류장에 하차했을 때, 드디어 분홍 좌석의 주인이 나타났다.

 

앞으로 맨 백팩에 매달린 핑크의 동그란 장식. 그것은 "나는 지금 생명을 품고 있는 소중한 몸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긴 빛나는 메달이었다.

 

겉으로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처녀같은 모습이었으나 그녀는 당당하게 그 좌석에 앉았다. 내 뒷 좌석에서 소근거리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이제 포태했구먼 잘했네! 잘했어!" "저렇게 앉아 가니 너무 좋네."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 축복의 덕담을 들려주는 목소리들이 그렇게 따뜻했다. 분홍 좌석의 위엄 덕분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들을 위한 사회의 작은 배려가,그 배려를 잊지 않는 승객들이 있기에 그 임산부는 더할나위 없는 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든 것이 그렇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복마전같은 정치와 묻지마 범죄 등,많은 것들이 여전히 우리를 하류 국민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아주 작은 것들의 놀라운 배려와 변화는, 우리 국민들의 대부분의 의식이 이미 상류임을 실감한다. 어느 나라이든지 치부는 있으나, 다만 그것을 덮을 수 있는 고양 된 의식의 국민들이 다수인 사회가 선진국이다.

 

오늘 분홍 좌석의 배려를 받은 임산부는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 에게 말하며 기뻐할 것이고, 듣는 사람들은 흐믓할 것이다. 버스에서 보는 사람들도 잠시 따뜻한 심정이 되었으니, 이런 기운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 바로 좋은 나라이다.

 

모든 국민들이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닌,작은 배려의 나눔과 마음의 공감이 기본이 되는 나라가 선진국인 것이다.

 

마치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저주를 말하지 말고, 다니면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순간의 작은 이야기들을 만나 보라고 말이다.

 

나라의 크기와 상관없이 백성들의 의지와 신념과 애국심이 항상 그 나라를 지켜 왔고,거기에 한두명의 리더가 힘을 내어 앞장 섰다. 한강토의 백성들이 바로 그런 국민임을 나는 알고 그것이 자랑스럽다.

 

어느 시 대나 엉망인 위정자들이 있었으나, 이 백성들은 기어이 물길을 바꾸고 옳은 것으로 스스로를 드높였다. 경험하지도,보 지도 않고 무시하며 격한 흐름만을 쫒아서 부화뇌동하는 무리들 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음을 역사는 말해 준다.

 

아주 작은 배려를 할줄 아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회 정신을 만든다. 서민들의 발인 버스와 지하철에 자리잡은 분홍 좌석은 우리의 위대한 사회 공감이다.

조종현 기자 maeilnewstv0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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