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사는 곳 , 살아야 할 곳

  • 등록 2025.11.12 15: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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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 ,살아야할 곳

 

     권영심

이십여년 전부터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깊은 산 속이나 오지에 집을 짓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꿈을 키워왔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지 못해도 부지런히 산악회도 따라다니고 여러 곳에 가보기를 좋아했다. 그동안 여러 지인들이 귀촌, 귀어 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삶은 내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십여년 전에 동생뻘 되는 지인이 아이들은 놔두고 부인과 함께 강원도의 깊은 산 속으로 집을 옮겼다. 말만 들었지, 그들이 우리를 초대한 것은 그후 이 년이 지나서였다 .

 

화천의 깊은 산골이었는데 정말 심심산골이었다. 개간되지 않 은 땅을 사서, 집 한 채를 짓고 계곡물을 끌어 집 안에 수도 시설 을 하고 축사와 밭을 만드는 것으로 이 년을 보낸 것이다.

밤이 되자 주변에 단 한개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밤하늘의 별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 황홀감마저 느꼈다. 이 세상이 아닌듯한 그 적막한 느낌에 더해지는 바람과 별빛들...

 

그러나 그 부인의 말은 나의 그런 감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사람이 그립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너무 어려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도시에서 살 때의 배 이상의 힘이 든다고 했다.

차를 타고 삼십여분은 내려가야 겨우 마을이 나오는데, 진통제 라도 하나 살려면 그보다 한 시간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여름엔 가뭄으로 물이 끊기고, 겨울엔 눈으로 완전 고립 될 때가 한두번 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갈 때가 여름이었는데 목욕은 할 수 없었고 설거지도 아주 소량의 물로 해야 했다. 여자에겐 참 힘든 환경이란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인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했을 때, 그들은 결국 인천으로 피난나오고 말았다.

 

또 다른 지인 내외는 강화도의 외진 곳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일 년을 버티지 못하 고 도시로 나오고 말았다.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노라고 했다. 해만 지면 주변이 너무나 적막해지고 커피 한 잔이라도 나눌 곳이 없단다.

 

서울에 살 때 알았던 언니는 남편의 성화에 섬에 가서 살다가 맹장이 터졌으나 병원으로 옮기지 못해 결국 사망하는, 기가막힌 경우를 당하고 말았다. 악천후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해 의료 헬기 까지 이용했으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외에도 몇 몇의 지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시골과 도시를 유랑민처럼 떠돌고 있다. 가장 큰 공통점 은 사람과의 교유를 나누지 못하는 외로움이었다. 분주한 도시 생활을 이어왔던 사람들이 귀촌을 했을 때 처음은 그렇게들 좋아했었다.

 

전화를 받아보면 정말 행복하고 목소리는 소녀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 . 반 년 쯤 지나면 밤 늦은 시각에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내가 안 자는 것을 알 기에 그 시간에 전화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을 알고 ,언니나 형님들은 하나 둘씩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웃들과의 사귐이 너무 힘들고 남편이 외출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무 무섭고... 외롭고 쓸쓸해서 돌 것 같고 놀러좀 와라. 등등 전원생활의 동화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외딴 곳에 버스조차 타기 힘든 곳에 들어가 사는 지인 들의 고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면서 알아갔다. 젊었을 때나 고독을 즐기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지, 뿌리를 옮겨 심어진 노년의 고독은 무서운 형벌이라는 것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에 지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사람의 온기만이 삶을 이어 갈 힘이 된다는 것을 더구나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노년의 시간에, 병원과의 거리가 멀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구급차가 무리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 했다.

 

자매들끼리 또는 몇 가족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정말 갈수록 행복해짐을 보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 계획을 많이 수정했다. 깊은 산 속이나 외진 오지는 안 가는 것으로 하고, 지인들이 쉽게 오고갈수 있는 곳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십여분을 걸으면 적어도 하루에 서너번 버스가 다니는 곳.
자동차를 타고 들어와도 바퀴에 무리가 안 가는 편안한 길에 집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무조건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젠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는 꿈은 현실에서 는 너무나 위험한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요즘. 앞으로 살아야 할 곳을 열심히 찾아보아야겠다. 인간의 온기가 이어지는 그런 곳. 그리움을 찾아, 정을 찾아, 추억을 찾아, 서로 오갈 수 있는 곳에 살아야 할 곳을 찾아야겠다.

조종현 기자 maeilnewstv0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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