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칼럼] 활명수,민족생명의 물

  • 등록 2026.03.04 12: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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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민족생명의 물

 

    권영심

나는 편식이 굉장히 심한데 마시는 것도 다르지 않다. 탄산 음료 이든 과일쥬스든 내 느낌에 통과하는 것만 마신다. 그 중에서도 활명수나 박카스, 비타500같은,건강을 도와주는 것들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일단 병에 든 것은 거의 노!라고 할수있다.

특히 활명수나 박카스는 냄새도 맡기 힘들어해서 안 마시고,마셔 본 적이 없다. 마셔본 뒤 이건 아니야가 아니고, 코 끝에 스친 무언가가 나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었다 고 들었다. 누가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활명수와 뇌신을 달고 살았고, 아버지도 속이 불편할 땐 무조건 활명수였다. 활명수를 만드는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를 말해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약에 대해선 보수적이고 강박적인 면까지도 가졌는데, 자신이 인정한 약이 아니면 절대로 복용하지 않았다.

 

상처엔 호랑이연고,소화불량이나 급체엔 손을 따고 마시는 활명 수, 감기엔 제민당에서 지은 약을 달여서 마셨다. 저리고 쑤시 는 모든 증상엔 신신파스였고, 보약 종류의 양약도 신뢰하지 않았다. 미국약을 최고로 치던 그 당시에도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약방문을 쓸 수 있었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한약 처방도 많이 해주었다. 보약이래도 아버지가 약재를 구입해서, 또는 재민당에 부탁해서 먹었을 뿐 건강에 좋다는 어떤 약에도 좌우되지 않았다.

 

이명래고약으로 어지간한 종기나 부스럼은 해결했고, 몇 가지의 약초로 즙을 내어 고를 만들어 발라 주었다. 중풍이라는 병이 생기기 전엔 약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많이 먹고 항상 집에 쟁여 놓는 약이 활명수 였다. 그러나 나는 질색팔색을 했기에 아버지는 이 좋은 약이 왜 싫으냐고 할뿐, 내게 먹이려고 애쓰지 않았고 나를 위해 재민당 에서 환을 지어다가 먹도록 했다.

 

환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 였지만,나는 그 약을 먹었고 지금까지 활명수 한 병을 마셔 본 적이 없다. 어른이 되 어서 나는 왜 활명수를 못 마실까를 가끔 생각하며 아버지가 어릴 때 들려 주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아버지는 활명수를 마실 때마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대단한 약이라고 말하면서 그 어조엔 자긍심이 넘쳤다. 활명수를 마신 빈 병을 쓰다듬으며 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정말이지 애정이 넘쳐 흘렀다. 아버지의 표정이 보여주는 무언가가 항상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닿았다.

 

갈색병의 조그만 물약이 뭐 그리 대단한가...그래서 공부해보니 놀라웠다. 이 작은 약이 만들어진 것이 1897년 9월 25일 고종 33년때이니,조선시대의 약인 것이다. 130여년 전에 만들어 졌으니 세대로 치면 5세대 이상의 연륜이 쌓였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처음에 활명액이라고 불리웠다. 창립자인 민병호가 제중원에 있던 친구에게서 영감 을 얻어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브랜드가 되었으며 그 이름 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 활명액이 높은 효과로 인해 유사품이 엄청 쏟아져 나와서 부채표라는 상표를 만들었고 이또한 최초의 상표 등록이 되었다. 오늘날 선전에서 부채표가 아니면 활명수가 아니라는 광고는 그만큼의 묵직한 무게와 신뢰가 존재한다.

 

그 신뢰의 무게에 그 무엇보다 무거웠던 독립에의 갈망이 얹혀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활명수를 만드는 동화약품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 기여한 많은 일들을 일반인들은 거의 알지 못 한다.

 

활명액은 그 당시 한 병에 쌀 여섯 되를 주어야 살 수 있었던 비싼 약이었으나,그 당시 변변한 약이 없었던 조선 백성들의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만약 민병호 일가가 돈을 벌고자 마음 먹었다면, 어마어마한 갑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일제에 짓밟히자, 아들 민강은 동화약방을 독립 을 위한 비밀연락소로 만들었고,투사들에게 귀한 활명수를 건네 주었다. 활명수가 바로 돈이었다. 약장수로 위장할 수도 있어 돈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보다 안전했다.

 

독립투사들은 활명수를 가져가서 국경을 넘어 중국인들에게 비싸게 팔았고, 그 돈은 독립의 자금으로 상해 임시정부로 들어 갔다. 민강은 수 차례 투옥되어 고문을 거듭 받다가 그 후유증으로 48세에 순국했다.

 

그러나 일제는 끝까지 활명수의 비밀을 알지 못 했고 민만강의 순국의 댓가로 동화약방은 유지되어,오늘날의 동화약품이 되었다. 작은 병에 든 이 활명수가 이름 그대로 활명액이 되어 조선 독립사의 대하와 같은 역사의 이름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말하고 싶은 우리의 기업이다.

 

이런 회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자부심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어느 국가에 민족의 자긍심을 빛내주는 기업이 없 는 것은 혼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상업이 인류사를 관통하는 핏줄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문화와 전통이 가장 중요하지만 모든 시대의 국가는,정신이 살아 있는 기업들 또한 그 나라의 근간이 된다. 그래서 국격을 세우고 있는 몇 몇 기업이 우리의 자긍심이다. 나는 동화약품과 일면식도 없으나 이런 기업이 있어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한다.

조종현 기자 maeilnewstv0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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