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문해력 부족
권영심 작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뛰어난 것이 많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문맹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나라 안의 백성들이 읽고 쓰기에 전혀 불편이 없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국가는 이 시대에도 흔치 않다.
인류사엔 문자가 비의에 속한 시대도 있었고, 문자를 쓰고 그 뜻까지 이해하고 풀이하면서 문장력을 갖추는 것은 그 사람을 귀한 신분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문객, 서기를 귀하게 여겼고 문학가 들은 존경을 받았다. 문자가 없기도 하고, 있어도 백성들이 알지를 못 해서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신화와 설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한강토의 백성들에게 한글을 남겨 쓰고 읽도록 했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천 세에 빛난다. 백성의 목숨 값이 너무나 보잘것 없던 그 시대에, 글을 읽도록 군주가 염려한 일은 세종대왕외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음악과 미술과 공예의 예술가들은 쟁이였으나 문자를 다루는 신분은 누구에게나 공대를 받았다. 그래서 아무나 글자를 배우 지 못 했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세종은 신세계를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한글을 6세에 하루 만에 배웠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익혀, 그것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노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문자를 알았다기보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맞추면서 말을 만들 어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재미를 느껴 글을 가르치기를 즐겨 했다. 딸의 엉뚱함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가르친 아버지 덕분에, 국민 학교에 입학하고나서 세계 문학전집을 읽고 있었다. 내가 영재 여서가 아니라, 책에 있는 글자가 너무 좋았고 그 조합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좋았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 때의 전집들은 깨알만한 글씨에, 반 이상은 한문이었기에 실제로, 어린 내가 이해하고 읽었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다. 나는 그저 아는 글자만 맞추어 읽었고, 모르는 글자는 그냥 넘어 갔다. 아버지는 그런 내가 신기해서,
"뭐이 알고 보는 거이간? 너래 한문이 뭐인지도 모르면서 어째 그런 책들만 붙들고 있는 거이네? 눈이 아프지도 않간?
나는 그저 무겁고 글자가 많은 책이 좋다고 했고, 내 느낌을 개발새발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는데, 내용의 반을 읽지도 못 하는 딸이 말하는 내용이 그다지 본문과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구랑 누구가 어쩌고 저쩌고...나는 책벌레가 되었고 그것은 나에게 여러가지를 알게 했다. 책은 나를 넓고도 넓은 세계로 데려 갔는데, 지식보다도 나는 아주 놀라운 문해력 을 가지게 되었다.
문해력을 어휘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어휘력과 문해력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어휘력은 단어나 어휘를 많이 알고 언제든지 적절하게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문해력은 어떤 글을 읽고 그 안에 담긴 뜻이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어휘도 많이 알아야 하겠지만, 전문의 단락이나 행간에 담긴 의도와 내용을 분명하게 깨닫고 표현할줄 아는 능력인 것이다.
그 문해력 부족이 요즘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다. 지금의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책을 많이 읽었고, 적어도 자신 이 좋아하는 분야의 글에 대해선 나름의 문해력을 갖고 있었다.
독서의 영향이었고 그것이 당연했으나, 온갖 지식이 천지에 난무하는 이 시대에 오히려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너무 부족해서 난감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젊은이들은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배움조차도 인터넷이나 컴의 여러가지 기능으로 배우고, 그러다 보니 짧은 것을 선호하게 되고 표현도 간결해진다. 그것이 좋기만한 것일까? 섬세한 묘사와 자세한 설명은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문학가들의 길고 긴 장편을 읽으며,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끝없는 묘사에 감동해서 몇 번이나되풀이 읽곤 했다. 읽으면서 알아지고 가슴에 담기는 감동으로 몇 날을 설레었다.
새벽의 미명을 표현하는 장면이 한 페이지가 되어도 다 공감하고 이국의 자연과 하늘과 도시와 강과 바다와 사막...보석의 반짝임 보다 더 빛나는 언어들에 반하고 공감하면서 나는 읽는 것 이상 의 것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축약되고, 짧아지고,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우리는 생각 할 필요가 있다. 그까이꺼, 몰라도 돼...그럴 수도 있으나, 이 세상의 어떤 것은 때로 우리의 깊은 공감이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것이 될 때가 반드시 있음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