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유치원이 맞나?
권영심
얼마 전 오래간만에 전에 살던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원도심의 그저 그런 동네인 그 곳은 변화가 거의 없었는데, 딱 한 곳의 놀라운 변화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 곳은 그런 동네의 유치원치곤 규모가 제법 있었고, 십 몇 년 전에 지인의 손자가 끝내 입학을 못한 곳이었다. 대기 명단이 길어서 그 손자는 결국 좀 더 먼 곳의 어린이집에 들어가야만 했었다.
그 당시 우리 가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100여미터 간격으로 그런 크고 작은 어린이 시설이 10여개가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무슨 유치원, 어린이집...그런 명칭으로 시장으로 가는 길에 만 다섯 곳이 넘었다.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 그 때에, 한 마을에 그렇게나 많은 어린이 교육 기관이 존재했었다. 그런데도 각 기관마다 대기 명단이 길었다.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말이니, 생각해보면 소름이 끼친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보이지 않는 유치원에 처음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 자리가 유치원이었다는 생각도 못한 채 걸었는데 골목 초입의 노란 건물이 그대로 있어, 아!!! 유치원이 아직 있네! 그런 반가운 마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졌다. ㅇㅇㅇ강아지 유치원...강 아지 유치원이 성업중인 것은 알지만, 이 동네에도 생겼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원도심의 동네에서 강아지 유치원이 성업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하지 않았다.
그것도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이 이름도 그대로, 단지 원생이 사람에서 강아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있었다. 미끄럼틀이며 그네등, 아이들의 놀이기구가 완전히 사라진, 빈 마당이었다.
나는 하얀 울타리와 이어진 문 앞에서 한참 섰다. 노란 벽에 귀엽고 예쁜 강아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굳게 닫힌 마당 안 쪽 건물의 문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삼 층의 건물 안에 개들이 수업을 받고, 사람 교사들이 보살피고 가르치는 광경이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뛰어 놀던 모든 자리에서 개들이 놀고 먹고 자고...그 순간의 내 기분을 무어라고 형용을 못 하겠다.
서글픔을 지나서 슬픔을 느꼈다는 맞겠다. 움직이지도 않고 더 슬퍼져서, 결국 나는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끼고야 말았다. 인천에 와서 처음 살았던 동네였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시도때도 없이 들었던 그 때...
집 앞, 골목마다 사잇길에도 아이들이 있었다. 아침에 길에 면한 베란다에서 오른 쪽으로 몸을 비틀어서 사거리를 보고 있으면, 노란 버스가 아이들을 쏟아내고 맑고 밝은 목소리들이 재잘조잘, 시끌벅적...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하얀 철문에 기대고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장난 가득한 말을 주고 받으며 얼마나 행복하게 웃었던가?
그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청년들이 되었을 테고, 그 공간은 개들이 차지했다.
이 느낌의 고약함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실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의 어린이집 대부분이 빈 건물이 되어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없는 것을 이토록 고약한 느낌으로 알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강아지 유치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유치견 놀이방, 강아지 모임터, 강아지 놀이방 등...다른 표현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어떤 세월이 와도 인간과 동물이 동일시 되는 표현은 그다지 옳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