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방'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쯔양' 사건도 사실 먹방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점차 먹는 문제 라든가 먹는 것을 주제로 한 미디어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나 많이 먹는냐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잘 먹는냐는 질적인 문제가 주요 주제다. 얼마나 맛있는 것을 먹는냐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음식이 되는냐, 어떤 음식이 건강식이냐가 주요 주제가 되는 시대다. 이런 흐름을 따라갈 때, 명리학 측면에서도 어떤 사주가 미식가(美食家)가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미식가 사주는 식상(食傷)이 사주내에서 길신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식상은 먹는 것과 관련 되어 있는 십신이므로 식상이 발달한 사람은 미각이 발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관 보다는 식신이 발달해 있는 사주가 미식가 자질을 갖추거나 요리사로서 대성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 중에 미식가로서 평가할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소동파를 첫번째로 말하고 싶다. 소동파는 중국 북송(北宋)의 시인이자, 학자이고, 정치가다.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명이 아니고 호(號
지금 선거가 한창이다. 거의 모든 선거는 다수결원칙에 따라 다(多)득표자를 뽑는데, 이처럼 우리는 다수결 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정책결정이나 지도자 선출에서도 거의 대부분 다수결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과연 다수결은 진리이고 항상 구성원들을 최대치로 충족시키는 합리적인 의사결정방식일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물론,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단 2개만 존재할 때는 다수결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3개 이상이면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은 중대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개인의 선호와 사회전체의 선호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수학자인 꽁도르세(Nicolas de Condorcet)가 다수결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라고도 불리는 ‘꽁도르세의 역설(Condorcet paradox)’은 다수결제도가 유권자의 선호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어떤 유권자가 A, B, C라는 3명의 후보자를 두고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할 때, A를 B보다 선호하고(A>B), B를 C보다 선호한다고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