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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암스테르담의 호그벡마을]

[매일뉴스]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이 시대에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병은 무엇일까? 모든 병이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것이 아니고, 생로병사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원형적 터널이다.

 

그런 삶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고뇌하고 슬퍼한다. 특히 더 큰 고통으로 처절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병자 혼자만이 아닌, 온 가족이 비참한 실생활이 되어 버리게 만드는 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치매, 알츠하이머... 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재앙을 지금까지도 예방할 수가 없다.

 

우리가 젊을 때 치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었다. 노망이었다. 노망이라고 불리던 시절엔 이 병은 그다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가족 내에서 해결이 되었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들 며느리는 노망난 부모를 돌보았다.

 

동네 사람들도 저 집 어르신 노망이란다... 당연한 인생의 수순처럼 말했고, 이웃 사람들도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치매는 모든 인과 관계를 박살 내는 무서운 병이다. 그 어떤 자식도 중증의 치매 부모를 돌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요양원이 마지막 안식처요, 무덤의 바로 전 단계인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되어 버렸다.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찾아가는 자식은 효자이다. 그런데 보는 자식이 더 괴롭고, 인간인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거기에 있으니 말이다. 이것만이 정답일까? 나는 어릴 때의 노망이 든 할부지 할미들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너무나 심한 상태가 되어 온 집안 식구들이 힘들어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가족들은 일상을 살고 마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거들었다.

 

할미가 밖에 나와서 아무거나 주어 먹으 면 지청구를 하면서도 손과 얼굴을 닦아 주고 먹을 것을 쥐여주고 집에 데려다 주었다. 가게 앞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해주었고, 평상에서 자면 홑껍데기 라도 덮어 주었다. 아무도 치매 노인을 피하지 않았고, 자기네 수돗가에서 씻겨주는 것도 예사였다.

 

"에고,할미요! 이게 뭡니꺼? 인자 알라가 되 뿌리 가지고 우짜 쓸까예? 지지! 지지 만지면 며누라한테 혼날거인데,가만 있지소! 시 꺼 줄 꺼이 깐데..."

 

또 더럽힐망정 깨끗이 씻겨주고 닦고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주기 예사였다. 오늘날 그런 모습들은 씻은 듯 사라지고 노망은 치매로 변해서, 일반인들과 철저하게 격리되고 분리되었다.

 

그렇다면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 까? 다른 대안은 정녕 없을까? 앞으로 과학이나 뭐든지 더 발달해서, 노쇠하고 병에 걸린 노인만 전담해 주는 간호 로봇이 생길 것이 분명하고, 인적 간병인의 부담은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란 것 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게 해주는 플랜은 조용히 시행되고 있었다. 이미 치매는 전 세계의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인간애의 존중이 기조가 된 시설이 세계의 여러 곳에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위스프에 있는 호그벡 마을도 그중의 한 곳이다.

 

2009년에 설립되었는데, 인간은 언제, 어느 때라도 갇히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만의 생활을 원한다는 기본에 의해 설립되었다. 중증치매환자 돌봄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네모난 벽돌 담장이 존재하고 담장 안의 마을이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치매 환매 환자들은 아예 담장을 의식하지 않는다. 일곱가지 양식이 있는 주거공동체인데, 거주자가 원하는 양식에 따라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치매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곳에 있는지 모를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데 아니라고 한다. 기억을 잃어가지만 그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자신의 삶을 잊지 않기에, 원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면 병은 호전된다.

 

현재 170여 명의 중증 치매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돌보는 인력이 170명이다. 일대일의 전담 케어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돌보는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은 모두 마을 주민의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다.

 

카페, 상점, 은행, 미용실, 서점 등, 모든 생활 시설의 주인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주택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간병인들도 하인, 하녀의 모습으로 시중들고, 누구도 그것을 힘겨워 해서 병자들을 학대하지 않는다.

 

어느 가게나 은행에서라도 노인들이 하는 것을 맞추어 응대해 준다. 하지 말라는 것으로만 일관된 우리의 요양원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삶이더라도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구속이 보이지 않는 호그벡마을이 환자들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호그벡마을보다 진화된 형태의 돌봄 시설이 나올 것이다.

 

우리의 돌봄 시설이 환자들에게 어떤 곳인지를 우리는 진정으로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곧 우리의 마지막 거주지가 될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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