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이십여년 동안 내가 보아온 드라마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기이할 정도의 편집증이 있어, 보는 순간 이것이다! 하는 느낌이 드는 것만 몇 번이고 되풀이 본다.
그외 다른 이가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도 한 컷이라도 보지않고, 다시보기를 통해 내가 좋다고 인정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그런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출연자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대사의 공감력이 가장 우선이다.
그런 몇 편의 드라마 중에 '미스터션사인'을 대여섯 번 이상 보았다. 장면들도 명장면이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집는 대사 가 때로 창 끝처럼 가슴에 박힐 때가 많았다.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언어는,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는 주문이다.
매국노 이완익이 죽는 모습의 씬에 매국노가 말하기를, "내 하나 죽는다고 다 넘어간 조선이 구해지네?"
이 말에 총을 든 고애신이 차갑게 말한 대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고애신은 멸시를 담은 눈빛으로 이완익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적어도 하루는 구할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을 수없이 돌려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나라를 구한다는 것, 생명을 구한다는 것, 어떤 의로운 일을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말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 이 대사를 만든 작가의 공감력을 찬탄하게 했다.
적어도 이 나라의 근대사와 애국지사들에 대한 진정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애와 공감이 없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있는 대사 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참 단순하다. 대통령이거나 거지이거나 하루이다.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 일생을 만든다. 그 어떤 이들도 하루, 한 순간을 이어가는 것이 삶이고 생의 완성을 만든다.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지가 우리의 일생을 바꾸고 만드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시작하는 하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의 질량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늘이 어제인듯 그저 고여있는 물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느 하루가 더 낫고 보람되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자신의 삶의 하루에 하루를 더 보태며, 일생을 만들거나 채우거나 보내거나 흘러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 어느 삶이라도 그의 것일뿐.
내가 하루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보태어주지 못 한다.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그렇게 힘겹게 살아온 나날들이 너무 애틋하고 가련해서 눈물이 솟구칠 때도 있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응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위인이나 영웅의 삶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를 비롯한 타인의 하루를 결코 멸시하거나 얕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다.
그것이 후회라고 할 수도 있지만 후회의 감정과는 또 다르다. 미스터션샤인에서의 실제 살았던 애국지사들과 매국친일파들의 하루는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지키는 이 하루가 조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염원했던 독립투사들의 하루의 시간...나라를 팔아 먹은 댓가의 호의호식 으로 누리는 하루가 벅찼을 매국노들의 하루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달라지는 하루가 바로 인간들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파노라마이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인간들은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는데, 다만 그 하루에 담긴 마음 이 저마다 다르기에 지금의 인류가 이루어졌다.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이루어가는 생명들의 삶을 그 어느 것 이라도 깊은 연민으로 대하며,스스로도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오늘을 보내야 함을 다시 깨닫는다. 내게 주어지는 하루에 또 하루를 더 하는 것, 인생이다.
2025년이 가고, 2026년 병오년의 날들이 시작되어도 결국 하루이다. 이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내딛는 발걸음은 영원을 만들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