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그들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소. 그러나 그 꿈은 달랐소. 그 꿈이 뭔지 아시겠소?" 이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진 사람은, 부모가 일제의 앞잡이였다고, 그래서 청천의 하늘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통곡처럼 내뱉던 어느 재야 사학자였다.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먼 곳으로 떠나,고통이 없는 다른 생의 시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을 믿는다. 아무것도 아닌,시골의 조그만 면의 서기였던 아버지는 일본인보다 더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고 엄마도 못지 않았다. 그가 낱낱이 이야기한 일들은 어쩌면 요즘에도 이어지고 있는 못난 인간들의 갑질들이다. 일제 강점기의 땅에서 태어난 그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자랐다. 동무들과 다른 옷을 입고, 음식을, 운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이 그에겐 행복이었고 부모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그는 듣고 느끼고 알아갔다.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살고있는 일본인 아이들은 그와 놀지 않았고 오막살이에서 사는 동무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 알았다. 그 마을에서 조선인 아이로는 유일하게 중학교에 가고, 하숙 생활을 하면서 그는 오로지 공부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분홍 좌석의 비움 몇 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하고, 의식과 문화의 수준이 놀라울 만큼 고양되었다. 내가 직접 느끼고 받고 보기 때문에, 마치 강물의 흐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애정하는 교통 수단인 버스의 변화는 감탄할 정도다. 그럴 시간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스가 만원이 되어 꽉 차는 일도 없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어느 자가용 부럽지 않다. 그리고 좌석은 더없이 깨끗하고 편안하다. 요즘 신형의 버스는 짐을 놓을 수 있는 칸까지 마련되어 있어,서서 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 전에, 좀 먼 곳에 있는 대상자에게 보조 식품 을 전달하고 42번 버스를 탔다. 좌석이 비어 있어 앉아서 왔는데,건너편의 앞 좌석이 분홍 좌석 이었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의 물결을 느낀다. 임산부를 위한 예비 좌석인데,서서 가는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20정류장 이상을 가야 하는 긴 거리여서, 나는 마음 속으로 오늘 저 좌석이 계속 비어서 가나,아니면 누가 앉나...혼자만의 내기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앉지 않았다. 어르신이 두어명
[매일뉴스] 12의 비밀 [권영심논설위원 칼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 두 가지 있는데 바케트와 크루와상이다. 크루와상은 가볍고 부드러운, 마치 부서지는 듯한 식감이 느껴지 는 것이 최상인데 거기엔 고유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밀가루와 버터를 얇게 층을 쌓아 겹쳐 만드는데, 최상의 바삭함 과 부드러움을 얻기 위해서는 12층으로 반죽을 쌓아야 하는 것 이다. 밀가루 6겹, 버터 6겹의 얇은 반죽이 겹쳐 12겹이 되어야 완벽한 크루와상의 맛을 얻게 된다. 크루와상이란 초승달이란 뜻인데 오스트리아 킵벨이란 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의 국기 안에 초승달이 들어 있는데 오스트리아에 의해 문을 닫은 제국을 조롱하기 위해, 제빵사들이 만든 것이 시초라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과 같은 최상의 부드러움과 풍미를 얻기 위해서 긴 시간 동안 제빵사들은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12층이란 비밀을 알아냈을 것이다. 크루와상이란 빵으로 시작했지만 숫자 12는 종결 의미가 큰 숫자이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숫자 12가 큰 역할을 하고 있고 나아가서 그 주술적인, 큰 의미에 매달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은 열 두달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열
[매일뉴스]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이 시대에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병은 무엇일까? 모든 병이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것이 아니고, 생로병사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원형적 터널이다. 그런 삶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고뇌하고 슬퍼한다. 특히 더 큰 고통으로 처절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병자 혼자만이 아닌, 온 가족이 비참한 실생활이 되어 버리게 만드는 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치매, 알츠하이머... 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재앙을 지금까지도 예방할 수가 없다. 우리가 젊을 때 치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었다. 노망이었다. 노망이라고 불리던 시절엔 이 병은 그다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가족 내에서 해결이 되었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들 며느리는 노망난 부모를 돌보았다. 동네 사람들도 저 집 어르신 노망이란다... 당연한 인생의 수순처럼 말했고, 이웃 사람들도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치매는 모든 인과 관계를 박살 내는 무서운 병이다. 그 어떤 자식도 중증의 치매 부모를 돌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요양원이 마지막 안식처요, 무덤의 바로 전 단계인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되어 버렸다. 요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