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이타심만이 인류를 살린다
불과 몇 년 전에 코로나19라는 점령군이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쉼 없는 전진을 했고 그것이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뉴스를 듣다 보면 이게 꿈인가 만화인가, 현실인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 전염병도 이렇게까지 인류에게 퍼진 적이 없고 공포를 확산 시킨 적이 없었다. 중세 때의 흑사병도 참혹했으나 전 세계에
퍼지진 않았었다. 그 때와 달리 모든 것이 발달된 현재의 세계가 하나의 감염바이러스에 그렇게 취약할 줄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그런데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코로나 19보다 더 확산되고,누구 나 앓고,누구나 익숙한 병이 있으니 바로 감기와 독감,폐렴이다. 그러나 아무도 감기와 독감과 폐렴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감기 걸린 친구와 식사를 같이 하다가 다음날 옮아도 웃고 말며, 원망 하지도 않고 치료받고 회복한다.
그 누구도 일상을 벗어나지 않고 생업에서 손을 놓거나 기피하지 도 않는다. 그러나 인류가 자연 죽음 외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병이, 사실은 우리가 전혀 무서워 하지않는 감기 독감이라 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감기 독감을 무서워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감기로 인해 삶의 일상을 중단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는 전 인류 의 일상을 멈추고 말았다. 이 감염병이 왜 이렇게 두려운 존재로 인류의 멱살을 틀어쥐었던 것일까?
한센병처럼 몸이 흉칙하게 문드러지는 것도 아니고,루게릭병처 럼 전신이 굳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심한 독감 증상과 비슷하다는데 코로나가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 이유는 ,사람의 만남을 단절시켰기 때문이었다.
만나면 감염되고 감염되면 사람의 상태에 따라 죽음에 바로 이를 수 있다고 하니,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 삶의 바이블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인간의 활동들은 중단되고 모든 일상들이 비틀
어져서 혼자라는 섬에서 살게 되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만나고 모이고 함께하고 같이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코로나는 함께 모이면 순식간에 퍼져 인간을 무너뜨렸다. 대부분의 질병이 그러하지만 사람들의 교통을 이렇게 거부하는 감염병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그러니 인류의 모든 커뮤니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종교 경제 스포츠 학교...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인간은 집으로 숨어야 했다. 가족끼리도 단절되어야 하며 확인되기 전까지는 원수 보듯이 피해야 한다. 이런 병은 일찌기 없었다.
그런데 더 두려운 일은 이것이 끝이 아니며 새로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은 지금과 똑 같은 모습들로 대처할 것인가 ?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절대로 영위할 수 없다. 서로의 관계가 단절되고 격리되고 해체되는 사회란 존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비참한 실상이 시시각각으로 뉴스에 보도되면 서 우리는 선진국의 허상에 한숨을 내쉬었었다. 세계의 대형,
미국의 재난 대처 방법의 허술함과 잔혹함이 유독 눈에 띠면서 우리나라에 있음을 안도했었다.
우리나라의 감염병 대처 방법은 신속하고 무게있는 책임감을 내보였으며, 얼마 후면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자의적으로 국가의 지시에 따르고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눈물 겨운 노력이 있었는지 우리는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의료진들을 비롯한 그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타심으로 환자들을 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타심이 아니라면 그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우한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백 일이 지나는 동안 전 세계 에서 십 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 침공의 와중에 있었던 우리나라가 그만했던 것은 모두 그들 덕택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위대한 이타심이 죽음의 행진을 멈추 었고 나라의 치욕을 씻어 주었음을. 오늘날 씻은 듯이 그 고통의 흔적이 사라지고, 모두가 웃고 떠드는 날이 왔지만 절대 잊지 말고 심장 한 쪽에 인을 새기듯 새겨둘 일이다.
인간이 이타심을 최대한 발휘할 때 위대한 영혼이 깨어나며,희망 의 파장이 인류를 살리게 될 것을 우리는 고통에서 깨닫는다. 보잘것 없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 오늘 .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누군가에게 고개 숙인다 .


















